우리 동네에 고객이 몇 곳일까 — 1인 영업자를 위한 시장 크기 감 잡기

"이 시장, 수조 원 규모입니다." 사업계획서에 어울리는 문장이지만, 월요일 아침 책상 앞의 1인 영업자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. 큰 숫자는 오늘 누구에게 전화할지, 이번 달 몇 곳을 접촉해야 목표에 닿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니까요. 영업 계획에 필요한 건 '큰 시장'이 아니라 셀 수 있는 시장입니다.
세 개의 원을 영업 언어로

투자 자료에 나오는 TAM·SAM·SOM은 사실 1인 영업자에게도 그대로 쓸모가 있습니다. 슬라이드 장식이 아니라, 시장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쪼개는 도구로 보면 됩니다.
- 전체 후보 — 우리 제품이 이론상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사업체. "전국의 병원", "모든 카페" 같은 큰 원입니다.
- 닿을 수 있는 후보 — 그중 우리가 실제로 접촉하고 공급할 수 있는 범위. 지역·업태·규모로 한 번 좁힌 원입니다. 부산 고객까지는 못 가고, 우리 제품이 안 맞는 규모는 뺍니다.
- 올해 잡을 수 있는 몫 — 닿을 수 있는 후보 중에서, 내 시간과 경쟁을 고려해 이번 분기·올해 실제로 접촉하고 계약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.
가장 작은 세 번째 원이 가장 중요합니다. 영업 목표와 이번 주 할 일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. 전체 후보가 몇만 곳이든, 내가 한 분기에 100곳밖에 못 도는데 그중 5%가 계약한다면, 이번 분기 현실적인 신규는 다섯 곳입니다. 이 숫자가 있어야 목표가 희망이 아니라 계획이 됩니다.
왜 굳이 세어야 하나
숫자를 세면 세 가지가 달라집니다.
첫째, 페이스가 잡힙니다. "월 3건 계약"이 목표라면, 전환율을 거꾸로 되짚어 월 몇 곳을 접촉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. 접촉 목표가 있으면 하루 할 일이 명확해집니다.
둘째, 좁힐지 넓힐지 판단이 섭니다. 우리 동네 타겟이 40곳뿐인데 목표가 월 3건이면, 그 동네만으로는 몇 달 못 갑니다. 반대로 400곳이면 굳이 넓히지 말고 그 안을 파는 게 맞습니다. 세어 봐야 지역을 좁힐지 넓힐지를 압니다.
셋째, 과욕을 막습니다. "시장의 1%만 먹어도"는 가장 흔하고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. 1%가 몇 곳인지, 그 몇 곳을 내가 올해 정말 접촉할 수 있는지 세어 보면, 목표가 발밑으로 내려옵니다.
바닥에서부터 세는 법
시장 크기를 잡는 방법은 둘입니다. 위에서 전체 시장 규모에 비율을 곱해 내려오는 방식(톱다운)과, 실제 단위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(보텀업). 1인 영업자에게 방어 가능한 쪽은 언제나 보텀업입니다. 한 줄 한 줄이 눈으로 확인한 숫자에서 나오니까요.
보텀업의 첫 줄은 늘 같습니다 — "대상 후보가 몇 곳인가." 그리고 이 첫 줄은 인터넷 검색으로 직접 셀 수 있습니다.
- 후보 세기 — "역삼동 정형외과", "마포구 필라테스"처럼 지역과 업종을 조합해 인터넷에서 잠재고객을 찾아 목록으로 만듭니다. 이 목록의 길이가 살아 있는 첫 줄입니다. 발굴의 기본기는 네이버 검색만으로 잠재고객 200곳 찾는 법에서 다뤘습니다.
- 적합한 곳만 남기기 — 목록을 적합도로 걸러 우리 제품이 실제로 맞는 곳만 셉니다. 이게 '닿을 수 있는 후보'입니다.
- 현실 전환율로 역산 — 접촉 → 상담 → 계약으로 이어지는 내 실제 비율을 곱합니다. 처음엔 감으로 잡고, 몇 달 데이터가 쌓이면 실측으로 바꿉니다.
- 월 접촉 목표로 환산 — 목표 계약 수를 전환율로 나누면, 이번 달 몇 곳을 접촉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.
각 줄이 추측이 아니라 눈으로 센 숫자라, 누가 "그 목표 근거가 뭐냐"고 물어도 답할 수 있습니다. 이게 시장 크기가 슬라이드를 넘어 이번 달 할 일이 되는 지점입니다.
숫자가 틀어지는 자리
세다 보면 늘 같은 곳에서 헛발을 딛습니다.
- 낡은 목록. 사업체는 매년 생기고 사라집니다. 몇 달 묵은 목록으로 세면 이미 문 닫은 곳을 세고 있는 셈입니다. 후보의 신선도가 추정 전체의 신뢰를 좌우합니다.
- 닿을 수 없는 곳을 넣기. 이론상 고객이지만 내가 올해 접촉할 수 없는 곳을 후보에 넣으면, 목표가 부풀고 자원이 엉뚱한 데로 갑니다. '이론상 가능'과 '실제로 접촉 가능'은 다릅니다.
- 같은 곳 두 번 세기. 여러 경로로 모은 후보를 합칠 때 중복을 안 거르면 시장이 커 보입니다. 목록의 정확도는 결국 정리 품질에서 나옵니다.
이길 수 있는 크기부터
시장을 세는 건 야망을 줄이는 게 아닙니다. 이길 수 있는 크기의 판을 먼저 정하고, 소진하면 넓혀가는 순서의 문제입니다. 우리 동네 40곳을 다 돌아 본 사람은, 전국을 막연히 바라보는 사람보다 다음에 어디로 넓힐지를 정확히 압니다.
큰 숫자에 취하지 말고, 다음 분기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작은 숫자를 손에 쥐는 것 — 1인 영업의 계획은 거기서 시작합니다.
후보 모수를 공공·사업체 데이터로 어떻게 단단히 까는지, 톱다운·보텀업 추정의 데이터 관점 심화편은 디비나라 우리 시장은 진짜 몇 곳일까 — 데이터로 추정하는 TAM·SAM·SOM에서 볼 수 있습니다.